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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이 다시 쓰는 배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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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이 다시 쓰는

배트맨
 
 
'영웅'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아서 남자들은 열광하지만 여자들은 시덥잖은 반응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기 보단 많은 남자들이 히어로가 되는 꿈을 한번쯤은 꿈꾸기 때문일지도.. 한편으로 이런 내용들은 대부분 이상주의적이다. 현실을 뛰어넘거나 아니면 말도 안될정도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로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기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들의 대사나 모든 이야기들이 허무맹랑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민망할 때도 있다.

배트맨.. 아마 이 이름 때문에라도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마치 이런 영화들은 어린이날 아이들에게나 보여주기 딱 좋은 영화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아마 본인이 대표적인 인물일거라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배트맨을 보게 된 것은 개봉을 하고 지난 영화로도 생각이 안될 정도로 긴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마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감독에 대해서 내가 궁금해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들은 영영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배트맨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시리즈이다. 어릴때 슈퍼맨과 배트맨은 영웅의 양대 산맥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요즘은 영웅물이 너무 많아서 슈퍼맨이나 배트맨은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 배트맨에게도 크게는 2가지 접근이 있다. 하나는 배트맨을 영화로 탄생시킨 '팀 버튼'감독의 배트맨과 히스레저의 조커로 유명한 다크나이트, 꿈에 대한 인식으로 유명해진 인셉션으로 국내에 인기를 얻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영화로 등장한 배트맨을 연대적인 순서로 나열하자면 팀 버튼이 만든 배트맨1(1989)과 배트맨2(1992), 그리고 본 서술에서는 다루지 않을 죠엘 슈마허의 배트맨3(1995)와 배트맨4(1997)가 있으며 그 이후에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비긴즈(2005)를 시작으로 다크나이트(2008), 그리고 후속으로 등장할 다크나이트2(2012)가 있다.

팀버튼에 대해서는 영화를 좀 본다고 하는 사람들은 알만한 유명인이다. 미술전공을 했다고 알려진 그는 색채가 남다른 영화를 구성한다. 배트맨1과 배트맨2도 그의 명성을 익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가 되어있다. 배트맨1은 다크나이트에서 등장하는 '조커'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지는데 원작이 어떤 스토리인지는 만화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캐릭터는 존재하나 양쪽 조커에 대한 내용들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아무튼 팀버튼은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야기하는 배트맨이다. 아마도 크리스토퍼 놀란에 대한 인물 중심적 이야기도 나중에 할 것이니 욕심 부리지 않고 배트맨에 대한 이야기만 나눠보고자 한다. 특히 그가 배트맨 비긴즈(The batman begins 2005)를 시작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느 작품이나 스토리를 이야기 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고대에나 현대에나 그것은 동일한 접근이다.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이 팽배해지며 이러한 색깔도 약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오히려 포스트모던에서는 스스로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정답이기에 과거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 단순히 구시대의 문학적 발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현대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라고 딱 잘라서 말해주겠다.

배트맨도 '메시지'가 있다. 과거의 메시지는 권선징악으로 간단했다. 악에 대해서는 비참하게 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여주며 사람들이 '선'을 갈망하며 살아가도록 유도해나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홍길동처럼 '의적'으로 보이게 하던지, 슈퍼맨처럼 대놓고 '영웅'으로 등장하던지 세상에 악은 대가를 치뤄야 하며 현재의 선이 핍박을 받아도 결국은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를 썼던 것이 과거의 문학적 의도성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메시지는 간단하지가 않다. 예술이 발달함에 따라 복잡해져가기도 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쉽게 밝혀주지 않으려 기하학적인 상징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니 애초에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통일된 개념이 아닌 개개인의 가치 선택에 따라 인식이 결정된다는 사회적인 사상으로 인해 접근하려는 주제 자체가 복잡하게 던져지기도 한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배트맨의 '선과 악'에 대해서 말이다.

2005년에 배트맨 비긴즈가 등장했을 때에 사람들의 반응은 그닥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다지 흥행하지도 않았다. 오늘날에 더욱 더 유명해진 크리스토퍼 놀란이 영화를 들고 나왔다고 하거나 크리스챤베일이 주인공이라는 말을 들으며 배트맨 비긴즈가 2011년에 등장했다면 아마 극장가를 꽤 매웠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하지만 당시 극장가의 경제사정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를 해주었는지 거의 기억조차 않나지만 오늘에서야 만난 배트맨 비긴즈는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배트맨 비긴즈가 단순히 배트맨의 '탄생비화'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물론 역사속의 많은 문학들은 영웅의 '탄생비화'를 통하여 그가 왜 영웅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필연성을 관객에게 설득하려고 해왔으나 배트맨 비긴즈는 한 평범한 인간이 영웅이 되어간다는 흔한 '성장 드라마'이긴 하지만 영화가 가지는 메시지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선과 악'에 대한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훗날 다시 이야기할 날이 있다고 생각하고 간단하게만 이야기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의 영화에서 '단순한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특히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현대인들에게 '선과 악'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단순하지가 않다는 것을 심각하게 설명하면서도 때로는 비웃음을 날리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뉴스에 보도되는 많은 사람들이야 말로 진짜 '악'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차선을 어기거나 횡단 신호를 어기는 것은 위법이라 생각해 보지도 않으면서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상대적'개념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 상대적 개념으로써의 선의 기준은 오로지 '자신'이어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주인공 브루스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악'에 대한 분노가 '선'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지 않을까 의심을 가지는 것 같으면서도 분노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삶을 살았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는 심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도둑질도 하며 그것이 가져오는 스릴과 성취감을 맛보며 흐려지는 '선'과 '악'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한다.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가? 사회적 규범들은 객관적으로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집행되는 것은 상대적인 기준일 때가 많다. 최근 심리학은 한 사람에 대하여 그의 인생 속에 가져온 '피해'때문에 오늘날의 현재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가 과거에 부모로 인한 억압과 가난으로 인한 핍박을 받았다면 오늘 그가 저지른 살인은 어느정도 용인 될 수 있다는 것이 (오바하자면) 사회적인 인식이다.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할 수 있으며 그것을 심판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고 설명할 수 있다면 제목처럼 그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의 시작(비긴즈)일지도 모른다. 정작 그 이야기는 다크나이트에 와서 심화가 된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라는 인물을 통해서 누가 선이라고 단정을 짓고 누가 악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에 대해 '조소'를 날린다.

선을 위해 살던 사람도 그 내면에는 악이 내재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한 인물을 통해 보여주려는 듯 고담시의 백색기사는 자신의 얼굴에 미남의 얼굴과 화상의 추악한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마치 빛으로 보여지는 겉은 사람들의 믿음을 위해 연출된 '선'을 말해주고 말해지지 않은 진짜 '선'은 어둠 속에 다크나이트로 가려지는 것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선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선'이 정말로 '선'일지는 알 수 없는 것이며 시각적인 설득으로만 믿는 현대인의 바보같은 단세포적 인식론에 대하여 비판을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선은 존재한다. 그러기에 배트맨도 영화속 주요한 인물들이 그것을 '지키기'위해 목숨과 함께 자신이 쌓아놓은 명예조차도 포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들이 너무 쉽게 선과 악을 규정짓는 일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삶은 현대인들이 무엇에 대하여 선과 악에 대하여 판단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임을 '인식'하라고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인셉션에서도 그것 자체가 가지는 '비도덕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채 코브가 임무를 성공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객들이 지켜보게 만다는 인셉션을 행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은 사라져서 악한 행동이 이행되기를 바라며 영화의 끝을 달려간다.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이 '조커'가 '악'에 속해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이 설득적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존재 자체를 '악하다'라고 여기려는 사람들은 소수다. 어쩌면 조커의 '왜 그렇게 심각해?'라는 대사가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말일 것이다. 오늘날 도덕적으로 무너져가는 세상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심각해지려 하지 않는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며 그냥 편하게 지내려는 단순한 사고를 하려 한다. 그렇게 말하는 모든 현대인들에 대하여 배트맨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설득하는 것일지 모른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의 영화들만 봐도 그정도의 이야기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내가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그것이 쉽지 않다는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 현대인들에게있어 가장 중요한 처세가 아닐런지..





올포스트 칼럼니스트(문화)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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