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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쉽'의 연결고리/리더쉽

당신 곁에는 충신이 있는가? 간신이 있는가?


OLPOST문화칼럼니스트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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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에는 충신이 있는가, 간신이 있는가?



당신은 주변에 간신을 두는가? 아님 충신을 두는가? 분명 대부분 간신보다는 충신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간신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라. 왠지 뒤가 구린일도 다 해줄거 같은, 무언가 뒤 꿍꿍이를 가지고 입에 발린 칭찬만 하는 사람의 이미지이다. 얍삽하고 자신의 이득만 챙기고, 때로는 나라도 팔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충신은 다르다. 자신의 절개를 가지고 때로는 자신의 충직한 간언으로 인해 본인에게 죽음의 상황이 닥쳐와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대나무 같은 곧은 사람의 이미지가 풍겨온다. 그런데, 정말 당신은 주변에 충신을 두는가?


 

충신은 대나무와 같아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충신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들을 옆에 두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봤지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자신에게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라고 해 놓고서는 직접 말을 하면 "너는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라고 하며 면박을 주는 경우도 보았다. 말로는 자신이 쿨한 사람인것 처럼 말해놓고는 정작 그래야 하는 상황에서는 여지없이 소인배임이 들어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본인은 여러 종류의 리더를 만나보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적은 사람, 경험이 많은 사람부터 적은 사람까지 말이다. 하지만 경험의 유무와 노소를 떠나서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리더를 만나본 적도 있다. 그런 경우 보통 자기의 의견이 가장 옳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리더와는 다른 의견에 동의를 해도 자신을 믿어달라며 공동체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문제는 일은 무사히 마치지만, 사람들은 생각하곤 한다. "다르게 했으면 더 좋은 결과들이 있었을 텐데"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이상적인 모임은 자신에게 충직한 간언을 하는 충신을 두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솔직히는 그런 사람을 싫어하곤 한다. 사실 생각해보라. 친구들 중에서도 자신의 이야기에 매번 토를 달고 그것이 잘못된 이유에 대해서 일목 요연하게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솔직히 마음이 편하던가? 그렇지 않을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생각은 이상향을 그려도 본능적으로 그런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이 보통이다.


 


우리가 일을 하다보면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 또는 자신의 말을 잘 이해하고 화합되는 사람을 찾게 된다. 자신의 말에 따지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말에 동의를 해줄 사람을 찾곤 한다. 그러나 공동체 안을 일색(一色)으로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 글 초반부에서도 한번 언급한적이 있지만, 그것은 리더 본인의 기분에는 좋을지 모르나 그것이 초래할 결과는 사실 절망적이다. 우선 공동체가 일색으로 간다는 것은 의견이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말로 하면 하나된 뜻과 일치단결이지 솔직히 그것은 일치 단결이 아니라 그 놈이 그 놈이라 다른 의견이 나올 것이 없는 것 뿐이다.


쉬운 예로 옛날 본인이 중학생 때에도 이승엽은 홈런왕이었다. 체육 시험 문제에 "우리나라 선수중 홈런을 가장 많이 쳐서 유명한 선수의 이름은?"라고 나왔다. 시험이 끝난 후, 몇몇 여학생들끼리 모여 답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야, 그거 정답 박찬호이지?" "어? 박찬호 맞아?" "와! 박찬호였어!"라면서 자기들끼리 좋아했다. 홈런왕 박찬호라 듣기만해도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박찬호가 너무 유명했고,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몇몇 여학생들은 서로 오답을 정답으로 여기기 충분했다. 거기에 남학생이 끼거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학생 하나가 끼어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당신의 공동체는 이런 여학생들만 있는 모임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가 나오면 그 사람을 굉장히 꺼리기 시작한다. 보통 정반합의 원리로 자신의 의견에 반대는 다른 면을 보게 해주고 더 나은 합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특별히 윗 사람에게는 '순종'과 '예'로 일관하는 것이 덕목이라고 생각되는 유교적 뿌리가 이런 충신들의 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곤 한다. 충신이 입을 열면 리더는 그를 싫어하고 멀리하고 그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만 하는 반대파라고만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혹시 MBTI라는 검사를 받아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특성을 16개 유형으로 구분하여 어디서 속하는지 보여주는데, 그 검사의 상담을 받다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장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과 많이 싸움이 날거라 생각하는데 보통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비슷한데 약간 다른 사람들과 많이 싸운다고 한다. 반대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하기에 싸움을 할 확율은 더 적고 오히려 더 화합해서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당신이 당신의 말을 잘 따라주는 사람으로만 공동체를 채워두면 그곳은 언젠간 뒤쳐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진정한 화합이라고 볼 수도 없다. 리더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더 발전을 시키기 위해서 충분히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 수용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보지 못한 점을 깨닫고 더 나은 '합'을 향하여 공동체를 달려가게 하는 '조율'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조율의 능력이 없이 자신의 반대파를 숙청하는 합일은 진정한 합일이라 볼 수 없고, 그런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분명 사람은 다 가지각색이라 처음에는 비슷하다가도 뒤에가서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당신은 언젠가 당신의 말에 거부를 하는 사람들을 버리고야 말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던가? 충신의 충직한 간언은 당신의 마음을 쿡쿡 쑤시는 바늘과도 같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당장 아프다고 해서 사람들을 멀리하고 그들을 버리는 선택을 하면, 당신은 '독재자'가 된다. 더 좋은 의견들이 등장하는데,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사람을 우리는 '독재자'라고 하지 않던가? 당신이 독재를 하지 않으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의견에 반대했을 때에 그것이 당신을 미워서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것이 더 좋은 의견인지 더 천천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내는 의견은 다 옳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글을 쓰는 이들이나 작곡을 하는 이들이 자주 말하길, 자신이 작품을 쓸 때에는 정말 그만큼 완벽한 작품이 없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을 천천히 살펴보자(스스로 객관적이게 되어) 그만큼 부끄러운 작품이 없다고들 한다.


우리가 사과를 하나 놓고 보더라도 사람이 보는 시선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도 다른게 분석하곤 한다. 어떤 사람은 색을, 어떤 사람은 생산 비용을, 어떤 사람은 맛을 생각한다. 즉, 당신이 보는 관점은 여러 관점중에 하나일 뿐이고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더 나은 것이 된다. 그러니 당신의 말이 늘 옳다고 여기는 태도를 버려라.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권위적인 태도를 버려라. 당신이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하면 사람들은 굳어지고 한 마디 하기 위해서 같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태도를 버리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당신의 의견에 대해서 평가를 해줄 것이고 그것이 더 좋은 대답인 '합'으로 가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공동체를 한 가지 색으로 물들이지 말라



당신의 공동체를 일색으로 물들지 말아라. 온 몸이 다 손으로만 이뤄진 것도 아니고, 발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온몸이 눈이면 걸음은 누가 걸어줄 것인가? 몸이 여러 지체가 하나가 되는 것처럼 당신의 몸을 보며 지혜를 얻으라 공동체의 '체'는 몸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신의 주변 사람들을 몸으로 여기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라.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이 글로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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